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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명화와 예술가

조르주 쇠라 Georges Pierre Seurat

by 반짝MD 2023.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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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쇠라 Georges Pierre Seurat

조르주 쇠라


신인상주의미술을 창시한 프랑스의 화가이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신인상주의의 시작으로 현대 예술의 방향을 바꾸었고, 19세기 회화의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조르주 쇠라 Georges Pierre Seurat 서명, 싸인


출생: 1859.12.2
사망:1891.3.29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직업: 회화 미술, 직업 화가, 데생화가, 제도사
출생지: 프랑스 파리
스승: 앙리 레만
제자: 샤를 앙그라
사조: 점묘법,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샤위춤


조르주 쇠라 Georges Pierre Seurat의 대표작품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1883∼1884),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1885), 등을 보인 자세, 밀짚모자를 쓴 남자, 서커스, 샤유춤

조르주 쇠라 Georges Pierre Seurat의 생애

조르주 쇠라는 파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조르주 쇠라의 아버지는 샹파뉴 출신의 법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파리 출신이었다. 조르주 쇠라는 조각가인 쥐스탱 르캥과 함께 처음 예술을 공부하였다.
조르주 쇠라는 1878년과 1879년 에콜 데 보자르에 출석을 했다. 브레스트 육군사관학교에서 1년간 복무한 뒤 1880년 파리로 돌아왔다.

자신만의 작업실로 옮기기 전까지 파리의 센강 좌안에서 그는 두 명의 학생 친구들과 작은 작업실을 공유했다. 그는 그다음 2년간 흑백화를 그리는 데에 노력을 쏟았다. 그는 1883년 처음으로 그의 주요한 작품을 남겼다. 작품의 이름은 〈아스니에르의 물놀이〉였다. 빈센트 반 고흐나 파블로 피카소 같은 주요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활동 초기에 쇠라는 과학자인 미셸 슈브뢸과 샤를 블랑의 색채 이론을 공부했다. 이 색채 이론들은 색채가 그것을 접하는 관람자에게 일으키는 감정적 의미와 인지, 그리고 광학적 효과에 대한 이해를 주로 다뤘다. 쇠라는 외젠 들라크루아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작품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그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 선배 화가들의 그림을 연구하곤 했다.

아스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 / 등을보인자세


파리 살롱에서 그의 그림이 거절당한 뒤, 쇠라는 이와 같은 주류파에서 벗어나 대신 파리의 독립적인 예술가들에 가담하게 된다. 1884년 그와 다른 예술가들은 (막시밀리안 루스(Maximilian Luce)를 포함하여) 독립 예술가 협회(Société des Artistes Indépendants)를 결성했다. 여기서 그는 동료 예술가인 폴 시냑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쇠라는 점묘주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진 후에 같은 작품으로 그림을 그린 시냑과 공유했다. 1884년 여름 쇠라는 그의 걸작인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그리기 시작해 완성하는 데에 2년이 걸렸다.

이후 그는 클리쉬 거리(Boulevard de Clichy)에서 가까이에 있는 작업실로 옮겨, 젊은 모델 마들렌 크노블로흐와 비밀리에 함께 살았다. 1890년 2월 그녀는 아들을 출산했다. 쇠라는 부인과 아들을 그의 부모에게 소개한 지 2일도 되기 전에 사망했다. 그가 죽은 뒤 마들렌은 그의 2세를 출산했으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인상주의에 엄밀한 과학성, 합리성을 더하면서, 이후에도 『포즈 잡는 여자들』(1887~1888, 메리온 반스 재단 미술관), 『샤유춤』(1889~1890, 오텔로, 크렐라 뮐러 미술관) 등의 대작을 그렸으나, 서커스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급사하였다.
쇠라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수막염, 폐렴, 전염성 앙기나나 디프테리아 중 하나가 아닐까 추정되고 있다. 1891년의 앵데팡당전에 『서커스』(1891, 파리 인상파미술관)를 미완인 채 출품한 후 급사하였다.

조르주 쇠라는 신인상주의의 일파이며 '신인상주의'라는 이름에 걸맞게 점묘화라는 새로운 그림 표현 기법을 창조해 내었다
색채학과 광학이론을 연구하여 그것을 창작에 적용해 점묘화법을 발전시켜 순수색의 분할과 그것의 색채대비로 신인상주의의 확립을 보여준 작품들을 그렸다.
조르주 쇠라는 인상파의 색채원리를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인상파가 무시한 화면의 조형질서를 다시 구축한 점에서 매우 의의가 있으며, 폴세잔과 더불어 20세기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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