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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명화와 예술가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

by 반짝MD 2023.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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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RAPHAEL, Raffaello Sanzio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예술가·화가이며, 흔히 라파엘로(Raffaello)라고 불린다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 궁정화가 조반니 산티의 아들로 태어난 라파엘로는 교황청에 그린 프레스코화로 크게 성공했으며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아테네 학당>이다.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
출생: 1483년 4월 6일
사망: 1520년 4월 6일
출생지: 이탈리아 우르비노
화가, 조각가, 건축가, 데생화가, 제도사, 디자이너
스승: Giovanni Santi, Timoteo Viti, 피에트로 페루 지니
제자: Giulio Romano, Raffaellino dal Colle, Gianfrancesco Penni, Gaudenzio Ferrari, Timoteo Viti, Perino del Vaga
사조: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성기 르네상스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의 생애

라파엘로는 이탈리아 마르케 지방의 움브리아 우르비노에서 출생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대 천재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화가이자 지성인인 조반니 산티의 아들이었다. 라파엘로는 젊어서부터 조형과, 감정, 빛, 공간표현 문제까지 두루 연마하였다. 그의 천재성은 16세에 그를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라파엘로는 궁정시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11세 때 아버지마저 잃어 사제(司祭)인 숙부 밑에서 자랐다.
시인이며 화가였던 아버지에게서 그림을 배우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동향인인 T. 비테에게서 배웠고 1500년경에 젊은 라파엘로는 움브리아 파의 지도자인 페루자 부근에 있는 피에트로 페루 지니(Pietro Peruggino)의 그림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 문화의 중심지였던 우르비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받은 문화적 혜택과 매력적인 그의 성품 덕분에 라파엘로는 쉽게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라파엘로가 어렸을 때 아버지 산티가 죽었지만, 죽기 전에 천재인 아들을 가르쳤을 것이다.

제단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1502~1503경)와 같은 라파엘로의 초기 작품들에서는 페루 지니의 유려하고 우아한 양식이 엿보인다. 이미 페루 지니보다 더 생기 넘치고 정교한 작품을 선보였고 페루자에서 독보적인 유명세를 얻은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미술의 경계를 확장시키고 있던 피렌체로 갔다.

라파엘로는 피렌체에 4년간 머물면서, 자신의 대표작인 성모 마리아 그림들 중 몇 작품을 그리게 되었는데,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는 인체 해부학에 대한 지식을 배웠고, 레오나르도로부터는 간결한 피라미드 구조와 효과적인 빛의 사용, 친밀감, 부드러운 색조 변화로 형태에 입체감을 주는 스푸마토 기법 등을 익혔다.

이를 통해 라파엘로는 호소력 짙은 고요하고 평온한 작품을 창안해 낼 수 있었다.
1508년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간 라파엘로는 교황의 화가로서 눈부신 활동을 시작했다.

라파엘로는 곧 엄청난 명성을 얻었고 여생을 로마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라파엘로는 화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매력적인 개성을 지닌 미남으로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평판을 얻었고, 놀라운 속도로 작품을 제작해나갔다고 한다. 라파엘로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준 작품 중에는 바티칸 교황청의 방들에 그린 프레스코들이 있다.

그중 하나인 <아테네 학당>(1510~1512경)은 이야기와 구성을 최상으로 구사할 줄 알았던 라파엘로의 재능을 보여주는 작품. 로마에서 작업한 다른 작품으로는 새로운 심리적 깊이를 보여주는 초상화들과 매력적인 바티칸 태피스트리 연작이 있다. 라파엘로는 서른일곱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지만,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었기에 가장 화려한 장례식으로 치러졌고 판테온에 묻혔다. 라파엘로는 가장 빛나는 표현으로 묘사되었고, 16세기 이탈리아 작가 로도비코 도미니치는 라파엘로를 "비범하고 가장 뛰어난 화가"라고 묘사했다.

라파엘로의 방/ 라 포로라리나

라파엘로는 확실히 적을 두지 않아서, 미술가들의 삶을 기록한 동시대의 전기 작가 조르조 바사리는 "재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상냥하고 유쾌한 태도를 지닌 우아한 사람이었다"라고 평했다.
또한 라파엘로는 많은 여인들을 사랑했다고 하는데, 바사리에 따르면, 연애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열병을 초래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절제하지 않고 연애에 몰두했다고 전했다.

라파엘로 - 아테네 학당


1504년 그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있는 피렌체로 이주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1508년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간 그는 그의 대표작인 아테네 학당이 포함된 프레스코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특히나, 아테나 학당의 작품의 <아테네 학당>에서 중앙에 붉은 옷을 입은 플라톤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모델로 한 것이다.

교황청의 건축과 회화, 장식 등 미술 분야에 관한 감독 책임을 맡고 있던 라파엘로는 37세의 생일에 갑자기 요절하게 된다. 그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교황 직위를 내리려 했던 추기경 레오 10세는 라파엘로가 요절하자 그를 애도하면서 국가장을 치르게 한다. 라파엘로는 현재 로마의 판테온에 묻혀있다.

라파엘로는 피렌체에서 몇 년간 그림을 그린 라파엘로는 1508년 로마로 건너갔으며 1509년 로마교황 율리우스 2세를 위하여 바티칸궁전 내부에 있는 스탄체(Stanze) 서명실(署名室)의 벽화를 그렸다. 이곳에 천장화를 그린 후 사면의 벽면에 《성체의 논의》 《아테네의 학당》 《파르나소스》 《삼덕상(三德像)》 등을 그렸으며 그의 탁월한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로마의 고대유적과 고전 연구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완성단계에 있던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화에서 조형적 파악법을 배워 공교한 율동적 구도를 바탕으로 고전적인 격조 높은 걸작을 이룩하는 데 성공하였다.

대표작품으로는, 라 포르나리나,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의 방, Madonna del Prato, The Deposition, 시스티나 성모, The Transfiguration Resurrection of Christ, Madonna and Child with the Book, The Marriage of the Virgin, Madonna del Granduca, Madonna of the Goldfinch 등이 있다.

라파엘로의 작품들은 아름다운 얼굴 표정들과 작품들의 고요한 조화, 조화로운 채색과 구도가 돋보여서 더 즐거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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