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앙리 에밀 브누아 마티스, Henri Emile Benoit Matisse)
프랑스의 색채화가로 뛰어난 데생 능력의 소유자. 초반에 신인상주의, 1905년부터는 포비즘의 경향을 보였다. 여러 공간표현과 장식적 요소의 작품을 제작하였고, 1932년 이후 평면화와 단순화를 시도했다. 로제르 드 방스 성당의 건축 설계, 벽화 등을 제작하였다.
출생: 1869. 12. 31
사망: 1954. 11. 3.
출생지: 프랑스 노르르 카토 캉브레지
직업: 화가, 조각가, 판화가, 디자이너, 그래픽 예술가, 데생화가, 장서표 작가, 제도사, 도예가
스승: 귀스타브 모로
사조: 인상주의, 분할주의, 야수파, 신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제자: 마르셀 그로메르, Patrick Henry Bruce, Ludvig Karsten, 액셀 레볼, Nina Simonovich-Efimova, Hadar Jönzén, Brita Lagerström-Hald, Sigrun Stéenhoff-Hjertén, Maj Bring, Jane Gumpert, Arvid Fougstedt, Carl Palme, Sigfrid Ullman, Filip Wahlström, Ingegerd Beskow, Milly Slöör-Tjäder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대표작품
마티스 부인, 알제리아의 여인, 푸른 누드, 푸른 누드 II, 로사리오 예배당, 춤, 모자 쓴 여인,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의 생애
앙리 에밀 브누아 마티스(Henri Emile Benoit Matisse). 프랑스의 화가. 프랑스 북부 르 샤토 캉브레시에서 출생, 니스 교외의 시마에 에서 사망. 처음 법률을 수학하여 재판행정담당 서기가 된다. 1889~1890년 처음으로 데생, 회화에 흥미를 가진다. 1892년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가 1895년 에콜 드 보자르의 귀스타브 모로의 교실에서 루오와 서로 알게 된다.
1892년에는 양친을 설득하여 다시 파리에 나와 아카데미 줄리앙의 부그로의 문하생이 되었다가 이어서 미술학교의 모로에게 배웠다. 동문인 마르케와 루오와의 교우는 이때에 시작하였다. 루브르에서 고인(古人)을 배웠고 인상파·신인상파를 한 발짝씩 연구해 갔다.
1896년 살롱에 첫 출품. 1898년에 스승 모로가 사망하자 다음 해에 아카데미를 떠나 파리의 아카데미 카리에르에 다니며, 드렝과 알게 되고, 그의 소개로 블라맹크와도 교제하였다.
1896 ~ 1897년경부터는 원색의 대비에 의하여 선명한 표현을 시도하였고, 앙데팡당 미술전의 출품을 통하여 젊은 드랭과 블라맹크와 깊이 사귀게 되어 색채는 더욱 선명해졌다. 이렇게 그는 젊은 화가들의 선두에 서서 포비즘 기치를 올리게 되었다. 마티스에 의하면 포비즘의 운동은 무엇보다 먼저 표현수단의 순수함을 재발견하는 용기를 고취하고 추진하려는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그가 회화에서 구한 또 하나는 '표현'이다. 그가 말하는 표현이란 얼굴을 찡그린다든지 강렬한 동작을 과시한다든지 하는 격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화가가 주체적으로 화면에 만들어 내는 색과 모양의 배합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은 다름 아닌 긴밀한 질서를 가리키는 것이다.
1908년 이후 그는 이러한 의미에서의 질서 있는 조형을 탐구하였다. 또 그 전후로 신인상주의에 접근, 1904년 볼라르의 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1905년의 여름을 드렝과 프랑스 남부 지중해 부근에서 보내고 함께 포비즘에 도달하게 된다(『콜리우르의 열린 창문』 1905, 뉴욕, 존 헤이 휘트니 소장 등). 다음 해 거트루드 스타인 집에서 피카소와 만난다. 그해에 알제리, 다음 해엔 이탈리아를 여행함. 1908년 『Note d’un Peintre』 (화가의 노트)를 발표하고,
모스크바의 대수집가 시츄 킨 에게 『후식: 붉은색의 하모니』(에르미타주 미술관)등을 매도. 1911년에는 그의 초대로 모스크바를 방문한다. 1909년 파리 근교 이 시 레 물리노에 옮기다. 1911~1912년에 모로코를 두 번 여행하였다.
그때부터 여러 가지 공간표현의 실험, 장식적 요소의 대담한 사용을 시도한다. 1916년부터 겨울은 니스에서, 여름은 파리에서 보내는 일이 많아지고, 『오달리스크』의 주제를 즐겨 택하게 된다. 1932년 미국 메리온 소재 '반즈재단'의 벽화 『댄스 II』를 완성함(반즈 재단미술관). 이후 평면화와 단순화의 시도(『장밋빛의 나부』 1935, 볼티모어 미술관 등)를 거쳐, 1940년대의 대실 내의 연작을 하기에 이르게 된다.
앙리 마티스는 '동 비중(同比重)·순일(純一)·절도(節度)'를 자기 스스로 표현의 3원칙이라 말했다. 마티스의 이러한 질서에 대한 감각은 자연법칙을 최상으로 하는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본다면 길에서 벗어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본질적으로는 명석한 형식감정을 존중하는 라틴적인 조형정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1941년 대수술을 받고, 1943~1948년 남프랑스의 니스에 정주, 절지화(切紙畵)에 전념하여, 작품집 『재즈』를 출판(1947). 1948~1951년, 건축의 설계, 벽화, 스테인드 글라스 등 모두 자신의 구상에 의한 로제르 드 방스 성당을 완성했다. 일찍이 조각과 판화에도 손댄 외에 말라르메 시집의 삽화(1931) 및 그래픽 작품도 많다. 가장 순수한 의미의 색채화가로 뛰어난 데생 능력의 소유자. 니스에 마티스 미술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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